감정가 6억 집이
어떻게 6,500만 원이 됐을까요?
열 번의 매각기일, 응찰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서울 관악구의 다가구주택 한 채를 사건 기록만 따라가며 읽어봤습니다.
서울에 6,500만 원짜리 집이 나왔습니다. 감정가가 6억 554만 원인 집인데요. 그런데 열 번의 매각기일 동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값이 열 배 가까이 내려가는 동안 누구도 사지 않았다면, 이유는 가격표 바깥에 있겠지요. 그 이유를 하나씩 찾아가 보겠습니다.
1 어떤 사건인가요?
사건번호는 2025타경102183, 부동산강제경매입니다. 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날이 2025년 2월 18일, 경매개시결정이 난 날이 2월 26일이니 이제 1년 반이 다 돼 갑니다. 그동안 매각기일이 열 번 잡혔고, 열 번 모두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습니다.
경매를 조금 아는 분이라면 여기서 벌써 눈썹이 올라갔을 겁니다. 서울에서 감정가의 10%대까지 내려온 주택은 흔치 않으니까요. 그런데 그 물건을 아무도 안 샀다는 건 더 흔치 않습니다. 단서를 하나씩 열어보겠습니다.
2 첫 번째 단서 — 사진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벽돌조 2층집입니다. 1층 46.68㎡, 2층 38.58㎡, 지하 6.30㎡를 합해 연면적 91.56㎡, 대지는 66㎡입니다. 사용승인일은 1972년 8월 29일 — 쉰 살이 넘은 집이지요.
위치는 나쁘지 않습니다. 감정평가서는 "봉천초등학교 북서측 인근"이고 "지하철역(서울대입구역-지하철2호선) 등이 소재하는 등 제반 대중교통여건은 보통"이라고 적었습니다. 용도지역은 제2종일반주거지역(7층 이하)이고요.
물론 단점도 보입니다. 골목이 좁고, 완경사지대의 사다리형 토지이며, 건축물대장에는 위반건축물로 등재돼 있습니다(감정평가서에도 "옥상 주택(위반건축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조건으로 서울 집값이 10분의 1이 되지는 않습니다.
즉 사진은 범인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이유가 있다는 뜻이지요.
3 두 번째 단서 — 가격표가 열 번 내려왔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 사건에서 유찰될 때마다 최저가를 20%씩 낮췄습니다(저감률은 법원·사건에 따라 20% 또는 30%로 다릅니다). 0.8을 열 번 곱하면 0.107이 되지요. 감정가의 10.7%라는 숫자는 그렇게 나온 값입니다.
날짜로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2025년 8월 26일 첫 기일에 6억 554만 원으로 시작해 4억 8,443만 → 3억 8,754만 → 3억 1,003만 원으로 내려갔고, 해가 바뀌어 2026년 1월에 2억 4,803만, 3월에 1억 9,842만 원을 지나 7월 28일 열 번째 기일에는 8,127만 원이었습니다. 열 번 모두 유찰이었습니다.
다음 기일은 2026년 9월 1일, 최저가 6,502만 원입니다. 여기서 한 번 멈춰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에서 1년 가까이, 8,127만 원에도 아무도 사지 않은 집이라면 가격표에 적히지 않은 무언가가 계산에 걸린다는 뜻이니까요.
4 세 번째 단서 — 명세서에 적힌 한 문장
"을구 13번 주택임차권은 배당에서 보증금전액을 받지 않으면 매수인이 인수"
낯선 말이 셋 있으니 한 줄씩 풀어보겠습니다. 을구는 등기부에서 소유권 말고 다른 권리를 적는 칸이고요. 주택임차권은 세입자가 보증금을 못 받은 채 이사를 가야 할 때, 법원에 신청해서 "나 여기 보증금 걸려 있다"고 등기로 남겨두는 권리입니다. 매수인이 인수는 낙찰받은 사람이 그 돈을 떠안는다는 뜻이고요.
한 문장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배당에서 보증금을 다 못 받으면, 나머지는 낙찰자가 갚아라." 경매에서 낙찰가 말고 따로 나가는 돈이 있다는 신호는 대부분 이 비고란 한 줄로 시작합니다.
그럼 그 보증금이 얼마인지가 남았습니다. 다음 단서로 가보겠습니다.
5 그래서 얼마를 떠안게 되나요?
| 임차인 | 점유 부분 | 전입일 | 확정일자 | 보증금(원) | 배당요구 | 대항력 |
|---|---|---|---|---|---|---|
| 한○선 | 1층 중 일부 46.68㎡ | 2021.09.14 | 2021.09.14 | 260,000,000 | 기재 없음 | 있음 |
| 송○현 | 옥탑층 33.05㎡ | 2022.12.09 | 2022.12.09 | 130,000,000 | 2025.03.12 | 있음 |
| 김○은 | 2층 33㎡ | 2024.05.31 | 2024.05.21 | 220,000,000 | 2025.03.13 | 있음 |
| 보증금 합계 | 610,000,000 | = 6억 1,000만 원 | ||||
세 사람이 왜 문제가 되나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는 세입자가 이사(주택의 인도)와 전입신고(주민등록)를 마치면 그 다음 날 0시부터 집주인이 바뀌어도 임대차를 주장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이걸 대항력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새 주인에게도 나는 세입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지요.
기준선은 말소기준권리입니다. 이 날짜보다 먼저 들어온 세입자는 살아남고, 뒤에 들어온 세입자는 낙찰과 함께 권리가 정리됩니다. 이 사건의 말소기준권리는 2025년 2월 26일 강제경매개시결정인데요.
세 사람의 전입일은 2021년, 2022년, 2024년 — 모두 그 앞입니다. 셋 다 대항력이 있습니다. 보증금 합계는 6억 1,000만 원이고요.
최저가 6,502만 원에 낙찰된다고 해봅시다. 그 돈으로는 6억 1,000만 원을 배당할 수 없지요. 못 받은 만큼은 명세서에 적힌 대로 낙찰자에게 넘어옵니다. 열 번의 유찰은 이 계산의 결과로 보입니다(추정).
오해를 하나 풀고 가겠습니다. 세 사람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법이 정한 대로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았을 뿐이고, 오히려 보증금을 잃을 처지에 놓인 쪽입니다. 인수는 누구를 벌주는 제도가 아니라 권리의 순서가 만들어내는 결과일 뿐입니다.
6 그러면 이 집의 진짜 가격은 얼마일까요?
이 숫자는 이렇게 계산했습니다 (가정 포함)
- 11회차 최저가 65,017,000원에 낙찰된다고 가정합니다.
- 매각대금에서 경매비용을 먼저 공제합니다. 다원경매 경매비용 계산기에 청구금액 260,000,000원·감정가 605,535,660원·유찰 10회·당사자 6인(기본 가정)을 넣으면 3,165,150원이 나옵니다. 배당에 쓸 수 있는 돈은 61,851,850원입니다.
- 이 돈이 전부 대항력 임차인들에게 배당된다고 가정해도, 보증금 610,000,000원 중 548,148,150원이 남습니다 → 낙찰자 인수(추정).
- 따라서 실질 취득가(추정) = 65,017,000 + 548,148,150 = 613,165,150원입니다.
- 배당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고 가정하는 최악의 경우는 65,017,000 + 610,000,000 = 675,017,000원입니다.
※ 위 금액에는 취득세·명도비·수리비 등 낙찰 이후 비용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실제 총부담은 이보다 커집니다.
※ 낙찰가를 올리면 배당 재원이 늘어 인수액은 그만큼 줄어들 수 있습니다. 다만 실질 취득가(낙찰가 + 인수액)는 쉽게 줄지 않습니다 — 올린 만큼 배당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이 물건은 6,500만 원짜리가 아니라 6억 1,317만 원짜리입니다. 배당이 예상보다 나쁘면 6억 7,502만 원까지 올라가고요. 감정가가 6억 554만 원이었으니, 이미 실질 취득가가 감정가를 넘어서는 구간에 들어와 있습니다. 여기에 취득세와 명도 비용은 아직 한 푼도 넣지 않았습니다.
7 왜 하필 이 집이었을까요?
감정가 6억 554만 원의 구성은 이렇습니다. 토지 66㎡가 5억 7,288만 원(㎡당 868만 원), 건물이 2,366만 원, 제시외 건물(샌드위치판넬 창고·주택)이 900만 원입니다. 더하면 정확히 감정가가 됩니다.
즉 감정가의 94.6%가 땅값이고, 1972년에 지어진 건물 몫은 3.9%뿐입니다. 경매에서 이런 물건은 "집을 사는 거래"가 아니라 "땅을 사는 거래"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 땅 위에는 보증금 6억 1,000만 원짜리 임대차 세 건이 얹혀 있습니다. 땅값과 보증금이 거의 같은 크기라면, 값을 아무리 깎아도 계산이 잘 떨어지지 않지요. 가격이 내려간 게 아니라, 남은 위험이 가격을 끌어내린 것에 가깝습니다(추정).
8 이런 물건이 흔한가요?
다원경매 DB에서 진행 중인 경매물건 22,691건을 세어봤습니다. 이 가운데 유찰이 10회 이상 쌓인 물건은 327건, 비율로는 1.4%였습니다. 드물긴 해도, 없지는 않은 숫자지요.
다만 종류가 한쪽으로 쏠려 있습니다. 327건 중 빌라(다세대·연립)가 143건, 오피스텔이 75건, 아파트가 40건인데 다가구주택은 3건뿐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그 3건 중 하나입니다. 서울만 놓고 보면 진행 3,306건 중 143건이 유찰 10회 이상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쏠렸는지는 이 집계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유형별 모수 자체가 다르고, 유찰 사유도 사건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숫자를 "다가구는 안전하다"는 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건 하나입니다 — 유찰이 길게 쌓인 물건은 전체의 1%대이고, 그런 물건에는 대개 이유가 붙어 있습니다.
집계 기준
- 대상: 다원경매 DB auction_cases 테이블, 법원경매(kind=court).
- 진행 정의: status = 'ongoing' 이고 매각기일(sale_date) ≥ 2026-08-15. 이 조건으로 22,691건.
- 유찰 횟수는 fail_count 필드(법원 기일내역에서 수집한 값)를 사용했고, 10회 이상은 327건입니다.
- 유형 분류는 property_type 필드 기준입니다(빌라 143 · 오피스텔 75 · 아파트 40 · 토지 29 · 임야 8 · 상가 11 · 단독 7 · 다가구 3 · 기타 11 = 327).
- 서울은 sido = '서울특별시' 기준 진행 3,306건, 그중 유찰 10회 이상 143건.
9 이 사건에서 가져갈 세 가지
최저가는 가격이 아니라 시작가입니다
진짜 가격은 낙찰가 + 인수 금액입니다. 표시된 숫자는 "여기서부터 부르세요"라는 뜻이지, "이 돈이면 됩니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수할 권리가 붙은 물건에서는 두 숫자를 반드시 나란히 적어보세요.
유찰이 쌓인 물건에는 대개 이유가 있습니다
유찰 횟수는 가장 값싼 위험 신호입니다. 열 번 유찰됐다면 열 번의 기일 동안 수많은 사람이 검토하고 포기했다는 뜻이니까요. 물론 이유가 사라지면 기회가 되는 물건도 있습니다. 다만 순서는 늘 이유 확인 → 가격 판단입니다.
첫 체크포인트는 명세서의 '전입일'과 '말소기준권리'
두 날짜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세요. 전입일이 앞서면 대항력이 있고, 그 임차인이 배당으로 못 받는 금액은 낙찰자 몫이 됩니다. 비고란에 "매수인이 인수" 같은 문구가 있는지도 함께 보시고요. 이 두 가지만 봐도 큰 사고는 대부분 피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이 말하지 않는 것
- 실제 배당 결과 — 배당표는 법원이 확정합니다. 본문의 인수 추정액은 "배당 재원이 전부 임차인에게 간다"는 가정 아래 계산한 값이며, 실제 배당은 순위·최우선변제·확정 경매비용에 따라 달라집니다.
- 지금 누가 살고 있는지 — 현황조사서에는 "현장에 임하여 점유자 등을 만날 수 없어서 전입세대열람 내역에 등재된 세대주를 임차인 점유로 보고함. 단, 점유관계는 별도 확인이 필요함"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명세서상 임차인은 3인이지만 조사 당시 전입세대확인서에는 세대주 2명이 등재돼 있었고, 왜 다른지는 기록만으로 단정할 수 없어 쓰지 않았습니다.
- 이 지역 시세 — 단독·다가구는 아파트처럼 표준화된 시세가 없고, 이 물건은 사실상 토지 거래에 가깝습니다. 근거 없는 시세·프리미엄 추정은 넣지 않았습니다.
- 낙찰 예상가와 수익 — 이 글은 이 물건이 얼마에 팔릴지, 사면 이익이 나는지를 예측하지 않습니다. 명도 비용·취득세·수리비도 계산에 넣지 않았습니다.
- "사상 최대" 같은 시계열 비교 — 우리 DB는 특정 시점의 수집분이라 과거와의 비교는 근거가 부족해 쓰지 않았습니다.
가격이 싸다는 건 결과이지 이유가 아닙니다. 이 사건이 남기는 문장은 하나입니다 — "왜 싼지를 먼저 확인하면, 싼 물건은 기회가 되고 확인하지 않으면 사고가 됩니다."
출처
- 대한민국법원 법원경매정보 — 사건 2025타경102183(서울중앙지방법원) 매각물건명세서·현황조사서·감정평가서·기일내역·현장 사진 (www.courtauction.go.kr)
- 다원경매 데이터베이스 — 사건·기일·임차인·등기 권리·감정평가 내역 원값 및 진행 물건 집계, 기준일 2026-08-15
-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대항력 등)·제3조의2(보증금의 회수) — 국가법령정보센터 (www.law.go.kr)
- 본문 사진 2장은 위 사건의 법원 공개 현장 사진을 다원경매가 수집·보관한 파일입니다. 인물·차량번호·문패 등 개인 식별 정보가 보이는 사진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